2008. 6. 27. 11:34

책, 서점에서 정가대로 사자(20020131 경남도민일보)

얼마 전에 인터넷으로 대학원 공부와 학위논문을 쓰는 데 필요한 책들을 산 적이 있다. 목록을 작성해 스무 권이 넘는 책을 대형서점의 온라인 판매망을 통해 한꺼번에 구입했기 때문에 시간 절약은 물론이거니와, 10% 정도의 사이버 머니가 적립되어 경제적으로도 소득이 되는 일이었다.

아예 20%정도 할인한 가격으로 책을 공급해주는 전문적인 온라인 서적 판매 사이트도 있다. 일정 금액 이상을 넘으면 우송비까지 물론 공급자가 부담한다. 이러니 인터넷 도서구입은 소비자로서는 발품도 덜고 돈도 아낄 수 있는,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는 ‘현명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 진보된 온라인 도서구입 방법을 두고 구태의연하게 다시 오프라인의 방법으로 서점에서 책을 사자니, 웬 뚱딴지같은 말인가 하겠지만 냉정하게 따져보면 전혀 터무니없는 제안은 아닐 터이다.

결론적으로 서점에서 책을 사는 일은 영세한 소형서점들과 작가들을 보호하여 건전하고도 활발한 국민 독서 풍토를 조성하고, 출판사들이 양질의 책을 생산하는 여건을 마련해 주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 결실은 온전히 소비자의 몫으로 되돌아 올 것이기에 하는 말이다.

한 권의 책값이 ‘5000원’이라 치자. 통상 작가의 인세가 10%(500원), 제작비가 약 20%(750~1000원), 창고보관료 등 관리비가 대충 10%(500원)정도가 든다고 한다. 그러면 출판사도 장사하는 하는 곳이니 10~15%(500~750원)정도의 이익을 거두고, 총판 등 도매상에서도 역시 10~15%(500~750원) 정도의 마진을 챙긴다면, 소매상 몫으로는 30~40%(1500~2000원)가 떨어지는 셈이다.

이는 정상적인 유통구조 유지와 서로의 생존을 위한 마지노선에 해당하는 몫이다. 그런데 이런 구조를 근간에서부터 흔드는 것이 바로 대형출판사들의 카르텔에 의한 덤핑판매와 방문 판매, 그리고 대형 서점과 온라인 판매업체들의 할인 판매인 것이다. 여기서 말 그대로 ‘죽어나는 것’은 바로 작가들과 영세 출판사들과 소형서점들이다.

유명 출판사에서 책 내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작가들은 인세나 원고료는커녕, 자비로라도 책을 내기 위해 출판사에 줄을 서는 수모를 겪어야 하고, 출판사들은 원가를 줄이기 위해서는 작가들의 원고료를 줄이거나 없애는 방법밖에 없어 작가관리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으며, 좋은 책을 낼 엄두보다 상업성의 유혹에 빠질 도리밖에 없게 된다.

또 대형출판사들과 온라인도매업체에 시장을 빼앗긴 서점들이야 당연히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결국 온라인 판매를 통해 소비자들이 얼마간 누리는 혜택은 작가들과 소형 출판사들과 서점들의 몫을 착취해 흘리는 대형출판사들과 온라인도매업체들의 콩고물인 셈이다.

이런 지경에서 어떻게 작가들의 창작열의와 자존심이 지켜질 것이며, 출판사들은 또 좋은 책을 내기 위해 힘을 쏟을 것이며, 그리고 정상적인 서적 유통망이 유지되어 건전하고 활발한 독서풍토가 조성될 것이며, 나아가 국민경제가 활성화될 것인가 말이다.

이미 어린이도서연구회 등 뜻 있는 독서관련 단체에서는 추천도서목록을 만들어 출판사들의 좋은 책 만들기를 유인하고, 어린이책 전문서점과 도서관 살리기, 서점에서 정가대로 책 사기, 어린이들과 함께 책 읽는 어머니 모임 조직 등을 통해 정상적이고 건전한 도서 유통시장 회복과, 국민 독서활성화 운동에 나서고 있다.

거대자본과 정부 지원이라는 두 날개를 가진 대형출판사들의 전집류와 수입출판이 대종을 이루는 출판 풍토 속에서도, 일부 출판사에 의해 우리 작가들의 창작물과 의미 있는 단행본 출판이 그나마 끊이지 않고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이런 노력들이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책을 많이 읽는 문화국가 건설을 위해, 얼마간의 지출에 대한 부담과 서점을 직접 찾는 수고스러움을 감수하는 일은 책 소비자인 국민들이 당연히 치러야 할 몫이다.

눈앞의 작은 이익이 아니라 좀 더 먼 미래의 큰 이익을 위해서 말이다. 책만이라도 상식적으로 정가대로 사고, 서점에 가서 골라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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