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6. 27. 11:31

냉이꽃을 기다림(20011228 경남도민일보)

새 천년 첫 해의 저물녘이 별스레 춥다. 이제 막 동지를 넘긴 한 겨울 날씨로야 마땅한 일이지만, 마음까지 얼음을 박는 이 지독한 추위는 분명 날씨 탓만은 아닐 터이다.

세모에는 모두들 옷깃을 여며 스스로를 추스르고, 그러면서도 바쁜 일상 속에서 소홀하기 일쑤인 주위의 안부를 챙겨 온정을 나누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세상일은 여전히 뒤숭숭하고 살벌하기 짝이 없다.

타협과 양보가 전혀 없는 극한 대립과 제 밥그릇 챙기기에만 혈안이 된 개인, 혹은 조직이기주의와 약자의 자기방어조차 용납하지 않은 강자의 횡포와 오만과 독선만이 횡행하고 난무할 따름이다.

그리하여 새 천년, 새로운 세기의 첫해가 넘어가는 이 무렵에도 사람사는 세상은 여전히 이성이 아니라 동물적인 힘의 논리에 따르는 정글과 다름이 없다. 그래서 아직도 우리의 문명은 가히 야만적이고 엽기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음이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끝내 족쳐 뭉개버리고, 이참에 여세를 몰아 이라크까지 손보겠다는 속내를 숨기지 않는다. 평화를 위한 대 테러전쟁이라는 미명에 포장된 미국의 속셈이 무엇인가를 빤히 드러내 보이는 대목이다. 덩달아 일본도 자기 영해에 출몰한 괴선박을 중국의 배타적 경제수역까지 추격하여 마치 축적된 무력을 과시라도 하듯 정조준으로 격침시켜버리고, 이를 전 세계에 공개하는 대담무쌍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패권적 대외정책이나, 일본의 자위권이 갈수록 위험수위를 넘어 사뭇 공세적으로 변하고 있음을 거듭 확인하는 일은 소름끼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세기를 온통 전쟁과 억압과 차별과 기아와 테러의 공포로 몰아넣었던 군국주의와 제국주의의 부활을 단지 징후의 수준을 넘어 실제적인 현상으로 목격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국내 사정은 어떤가. 지난 보궐선거를 통해 절대적 다수의 우위를 점한 야당은 국민의 여론이나 통치권 자체를 무시하는 오만방자한 힘의 논리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여론이나 정책의 타당성 따위는 아랑곳없이 오로지 기득권 옹호를 위해 밀어 부친 교원 정년 연장안이 그렇고, 건강보험 재정통합 백지화가 그런 대표적 실례다. 국민들은 오만하고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야당의 이런 행태를 지켜보며, 이들의 역사적 정체와 수권능력을 다시금 되새겨보지 않을 수 없다. 그리하여 국민들은 희망과 대안이 부재한 암담한 현실 앞에서 더할 나위 없이 답답하고 우울한 이 세모를 보내고 있음이다.

그렇다고 우리는 현실 앞에 그저 망연자실하여 희망을 포기할 것인가. 그래선 안 된다. 지금 이 추위 속에서도 쑥이나 꽃다지, 냉이 따위 봄꽃들이 여린 몸으로 언 땅을 헤집고 나오는 산고를 겪고 있음을 생각해보자. 눈뜨고 보면, 우리의 현실에서도 얼마든지 이런 의미 있는 노력들은 있다. 세계 도처에 미국이나 일본의 패권주의에 저항하는 깨어있는 이성들이 버티고 있고, 다행히 국내에도 여당의 쇄신 움직임이 있는가 하면, 야당에도 당론을 거부하는 소신들이 있다.

아직은 연약하지만 이런 노력들을 소중히 보듬어 우리들의 희망으로 조직하고 가꾸어야 한다.
결코 희망을 포기하지 않으리라 믿고 있는 우리 경남도민일보 독자들에게 필자의 졸시를 새 천 년 첫 세모, 그리고 새해, 희망의 선물로 붙인다.

냉이꽃 1
길가에나 묵정밭
더러는 쇠똥무덤 돌 틈새
찰싹 몸 붙이고 있다가
일제히 고개 들고 일어나
세상을 하얗게 덮어버리는
혼자서는 작은 꽃
어우러져서 큰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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