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6. 18. 23:42

다시 사람을 그리워 함(20011030)

지금은 깊은 밤입니다. 아마 자정쯤이나 되었지 싶습니다. 종종 잠들지 못하는 이쯤의 시간이면 사택 마당에 나와 내려다보던 밤바다와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리던 별빛을 떠올립니다.

참으로 정겹고 아름답던, 그래서 때로는 눈물겹기조차 한 그곳의 바다와 하늘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었습니다.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4년 동안 아이들 데리고 지신밟기 한다고 골목골목 안 간 곳 없이 없었지요. 마을 마을의 집과 배들, 우물, 사당, 마을회관….

또 아이들과 달음박질로 오르내리던 레이더 기지, 그 오솔길의 붉나무와 망개넝쿨, 우체국 뒤 앵두나무, 면사무소 앞 포장마차의 붕어빵, 눈처럼 빛나던 봄철의 산벚꽃, 가는개의 해바라기….

그리고 소설리의 지영이네 언덕배기 집, 상위네 가두리 양식장, 영화감독 이명세, 소설가 이명행과 같이 갔던 현대장여관, 공주식당의 갈치 회, 조도와 호도를 오가던 트로트풍의 갈매기호 선장님, 예명식당 사장님의 아침해장술, 늘 애국충정이 넘쳐 비장하기까지 했던 본촌 이장님의 마을 방송, 가로등 불빛 속으로 뛰어오르던 학꽁치떼, 조도 바위 위에 피어있던 바다구절초….

호도분교에서 일주일간의 풍물반 ‘지옥훈련’, 그때 찐 옥수수와 고구마를 전해주던 수빈이 할머니, 삼동새마을 금고의 새 사옥 집들이 공연, 남해군문화예술회관 개관 기념 초대 공연, 경남국악경연대회.경남청소년풍물경연대회 최고 입상, 늘 푸짐했던 풍물반의 자긍심과 갈비 잔치….

그리고 등대예술제, 자랑으로 펄럭이던 휘장 깃발, 군 전역에 휘날리던 아, 미조초등학교, 그 궁벽한 오지 학교 운동장에서 벌이던 군 풍물경연대회, 바다 시 백일장, 아이들 어깨와 눈에 넘쳐나던 자부심, 또 행사 때마다 달려오시던 김두관 군수, 일마다 지면을 아끼지 않고 후원해준 남해신문, 남해환경신문, 그리고 먼 오지에까지 세심한 스포트라이트를 보내주던 여수문화방송, 경남신문, LG사보 느티나무 등 많은 매체들.
 
그리고 그곳에서 낸 두 번째 시집 <혼자 먹는 밥> 출판기념회에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함께 밥 먹을 수 있도록 챙겨주신 따뜻했던 사람들, 천숙자.박철수.신동명.박대엽.최선심.강병철.윤선심.하태홍.권대진….

이 밖에도 촌놈횟집 형수님.기현이 엄마.수진이 아빠와 엄마.월드컵사장님.석훈이 엄마.상위 엄마.정욱이 엄마.현석이 엄마.민석이 엄마.진실이 아빠와 엄마, 또 늘 궂은 일에 함께 해주던 풍물반 엄마들, 사택 냉장고가 부서지도록 멸치며, 돔이며, 우륵이며, 갈치며, 밑반찬을 가득가득 채워주곤 하던 알 수 없는 수많은 손길들….

무엇보다 야생마 같은, 그러나 재능과 끼가 펄펄 살아 넘쳐나던 규섭이.초롱이.민석이.상위.기훈이.미나.영재.보람이.진실이.햇님이.이슬이.수윤이.기현이.혜훈이.보라.보건이….

이 밖에도 가출과 결석을 밥먹듯이 하며, 떼거리로 남의 집 가게를 털다 파출소에 연행되어가고, 날마다 머리가 터지고, 다리가 부러지고, 창문을 박살내던 말썽꾸러기들, 그 억제할 수 없던 끼를 각자의 재능을 찾고부터는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준마들이 되어준 수많은 사랑하는 아이들.

모두들 보고싶습니다. 오랫동안 믿음과 사랑을 전해준, 그러나 실망과 배신으로 답해온 많은 사람들과 결별을 하고, 사람으로 상처받아 쓰라린 가슴을 쓸어 내리고 있는 요즘입니다.

믿음을 배반당한 사람들은 거리로 나서고, 희망이 꺾인 사람들은 분노의 칼을 벼리고, 예비교사와 선생님들조차 휴교와 연가투쟁으로 맞서 싸워야 하는, 다시 이 흉흉한 시절, 그리하여 또 다시 사람이 사무치게 그리운 때입니다.

다들 안녕하신지요?

/오인태(시인.경남작가회의 부회장)

(2001년 10월 30일자 경남도민일보 <오인태 칼럼>에 게재됐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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