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6.27 11:36

그래야 꽃들에게 희망이 있다 (20020304 경남도민일보)

지난 설에도 귀성.귀경길의 혼잡은 여전했다. 당연히 연휴는 고생과 짜증으로 시작되고 끝나, 한 동안 그 여독이 사람들의 삶을 노곤하게 했을 것임이 뻔하다.

명절마다 맞는 이 ‘교통대란’은 비단 서울 사람들뿐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방에서 지방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에게도 이미 오래 전부터 비껴갈 수 없는 명절의 ‘통과의례’가 되었다. 이번 설에도 평소 같으면 1시간 30분이면 충분한 부산-진주간의 시간상의 거리는 6시간 내지 7시간의, 실로 ‘대장정’의 거리가 되어버렸다. 이쯤이면 진주에서 서울을 가고도 족히 남을 시간이다.

나는 명절 차례와 기제사를 모두 김해 아우 집에서 지낸다. 그래서 제사가 있을 때마다 남해고속도로를 다니게 된다. 기제사는 주로 평일에 닥쳐 별로 문제 될 것이 없지만, 명절에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 교통대란에서 나도 자유스럽지 못하다. 그러나 워낙 오랫동안 다니는 길이다 보니 내 나름대로 이 ‘통과의례’를 수월하게 통과하는 요령을 익히게 되었다.

그것은 남해고속도로를 피해 우회하는 방법이다. 김해인터체인지에서 나와, 냉정분기점에서 부산 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다가 창원터널 쪽으로 빠지는 것이다. 그리고는 창원을 통과해서도 고속도로로 차를 올리지 않고, 마산시내를 거쳐 함안까지 국도를 따라가다가 함안 인터체인지에서 다시 고속도로로 들어서게 되면, 이쯤에서는 대개 정체가 풀려 수월한 통행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올해는 이런 경험을 무시한 오판으로 해서 진례-마산 구간에서만 두 시간 이상이나 지체하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 구간에서 그 정도면 걸어서도 충분한 시간 아닌가. 다행히 진영휴게소 조금 지나 고속도로 전광판에 ‘마산외곽도로 전 구간이 차량증가로 지체되고 있으니 진주 방면으로 가는 차들은 구 고속도로를 이용하라’는 안내가 있었다. 그래서 마산 인터체인지에서 빠져 옛 고속도로로 차를 몰았다. 역시 막힘이 없이 차는 쌩쌩 내달려 산인 인터체인지까지 빠질 수 있었다.

두 시간 동안에 쌓였던 짜증이 모두 달아나는 듯 했다. 그런데 희한한 일은 옛 고속도로를 이용하라는 고속도로 전광판의 안내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따르는 차들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아마 새로 난 마산우회도로로 계속해서 밀려갔던 차들은 이 구간에서만 최소한 두 시간은 더 허비했을 터이다.

사람들은 왜 고속도로 전광판의 안내를 무시한 채 가던 길을 고집했을까. 사회나 타인에 대한 불신 때문일까. 아니면 얽혀있던 대열을 이탈하는 데 따르는 불안감 때문일까. 아니면 스스로를 얽매고 있는 고정관념이나 타성 때문일까.

그 사람들은 이런 인식이나, 아니면 스스로의 선택에 대해 후회쯤이라도 하고 있는 것일까. 돌아오는 길 내내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문득 트리나 포올러스가 쓴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에 나오는 애벌레들이 떠올랐다.

이 책에서 애벌레들은 꼭대기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고 서로 얽히고 설킨 채, 기둥을 이루어, 밟고 밟히고, 때로는 떨어져 생명을 잃으면서도 무작정 꼭대기를 향해 기어오른다.

그러나 이 애벌레 중 한 마리는 이런 무의미하면서도, 무모하기 짝이 없는 삶에 의문과 회의를 품고, 전혀 다른 길을 택해 나비가 된다는 얘기다. 여기서 ‘나비’는 부단히 자기 껍질을 깨고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는, 혹은 늘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고 수용하는 용기를 가진 자만이 이르는 도달점의 존재이다. 그리하여 비로소 하늘을 맘껏 날 수 있는 진정한 자유인의 상징어이다.

세상엔 제도나 시스템으로서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의식으로 인해 빚어지는 불편과 부조리와 불합리도 너무 많다. 타성과 관습과 고정관념의 틀에 갇힌 애벌레들로 가득 찬 세상에서, 이런 의식의 껍질을 깨고 나오는 나비들이 많아질 때, 그래야 꽃들에게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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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27 11:34

책, 서점에서 정가대로 사자(20020131 경남도민일보)

얼마 전에 인터넷으로 대학원 공부와 학위논문을 쓰는 데 필요한 책들을 산 적이 있다. 목록을 작성해 스무 권이 넘는 책을 대형서점의 온라인 판매망을 통해 한꺼번에 구입했기 때문에 시간 절약은 물론이거니와, 10% 정도의 사이버 머니가 적립되어 경제적으로도 소득이 되는 일이었다.

아예 20%정도 할인한 가격으로 책을 공급해주는 전문적인 온라인 서적 판매 사이트도 있다. 일정 금액 이상을 넘으면 우송비까지 물론 공급자가 부담한다. 이러니 인터넷 도서구입은 소비자로서는 발품도 덜고 돈도 아낄 수 있는,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는 ‘현명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 진보된 온라인 도서구입 방법을 두고 구태의연하게 다시 오프라인의 방법으로 서점에서 책을 사자니, 웬 뚱딴지같은 말인가 하겠지만 냉정하게 따져보면 전혀 터무니없는 제안은 아닐 터이다.

결론적으로 서점에서 책을 사는 일은 영세한 소형서점들과 작가들을 보호하여 건전하고도 활발한 국민 독서 풍토를 조성하고, 출판사들이 양질의 책을 생산하는 여건을 마련해 주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 결실은 온전히 소비자의 몫으로 되돌아 올 것이기에 하는 말이다.

한 권의 책값이 ‘5000원’이라 치자. 통상 작가의 인세가 10%(500원), 제작비가 약 20%(750~1000원), 창고보관료 등 관리비가 대충 10%(500원)정도가 든다고 한다. 그러면 출판사도 장사하는 하는 곳이니 10~15%(500~750원)정도의 이익을 거두고, 총판 등 도매상에서도 역시 10~15%(500~750원) 정도의 마진을 챙긴다면, 소매상 몫으로는 30~40%(1500~2000원)가 떨어지는 셈이다.

이는 정상적인 유통구조 유지와 서로의 생존을 위한 마지노선에 해당하는 몫이다. 그런데 이런 구조를 근간에서부터 흔드는 것이 바로 대형출판사들의 카르텔에 의한 덤핑판매와 방문 판매, 그리고 대형 서점과 온라인 판매업체들의 할인 판매인 것이다. 여기서 말 그대로 ‘죽어나는 것’은 바로 작가들과 영세 출판사들과 소형서점들이다.

유명 출판사에서 책 내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작가들은 인세나 원고료는커녕, 자비로라도 책을 내기 위해 출판사에 줄을 서는 수모를 겪어야 하고, 출판사들은 원가를 줄이기 위해서는 작가들의 원고료를 줄이거나 없애는 방법밖에 없어 작가관리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으며, 좋은 책을 낼 엄두보다 상업성의 유혹에 빠질 도리밖에 없게 된다.

또 대형출판사들과 온라인도매업체에 시장을 빼앗긴 서점들이야 당연히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결국 온라인 판매를 통해 소비자들이 얼마간 누리는 혜택은 작가들과 소형 출판사들과 서점들의 몫을 착취해 흘리는 대형출판사들과 온라인도매업체들의 콩고물인 셈이다.

이런 지경에서 어떻게 작가들의 창작열의와 자존심이 지켜질 것이며, 출판사들은 또 좋은 책을 내기 위해 힘을 쏟을 것이며, 그리고 정상적인 서적 유통망이 유지되어 건전하고 활발한 독서풍토가 조성될 것이며, 나아가 국민경제가 활성화될 것인가 말이다.

이미 어린이도서연구회 등 뜻 있는 독서관련 단체에서는 추천도서목록을 만들어 출판사들의 좋은 책 만들기를 유인하고, 어린이책 전문서점과 도서관 살리기, 서점에서 정가대로 책 사기, 어린이들과 함께 책 읽는 어머니 모임 조직 등을 통해 정상적이고 건전한 도서 유통시장 회복과, 국민 독서활성화 운동에 나서고 있다.

거대자본과 정부 지원이라는 두 날개를 가진 대형출판사들의 전집류와 수입출판이 대종을 이루는 출판 풍토 속에서도, 일부 출판사에 의해 우리 작가들의 창작물과 의미 있는 단행본 출판이 그나마 끊이지 않고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이런 노력들이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책을 많이 읽는 문화국가 건설을 위해, 얼마간의 지출에 대한 부담과 서점을 직접 찾는 수고스러움을 감수하는 일은 책 소비자인 국민들이 당연히 치러야 할 몫이다.

눈앞의 작은 이익이 아니라 좀 더 먼 미래의 큰 이익을 위해서 말이다. 책만이라도 상식적으로 정가대로 사고, 서점에 가서 골라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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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27 11:31

냉이꽃을 기다림(20011228 경남도민일보)

새 천년 첫 해의 저물녘이 별스레 춥다. 이제 막 동지를 넘긴 한 겨울 날씨로야 마땅한 일이지만, 마음까지 얼음을 박는 이 지독한 추위는 분명 날씨 탓만은 아닐 터이다.

세모에는 모두들 옷깃을 여며 스스로를 추스르고, 그러면서도 바쁜 일상 속에서 소홀하기 일쑤인 주위의 안부를 챙겨 온정을 나누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세상일은 여전히 뒤숭숭하고 살벌하기 짝이 없다.

타협과 양보가 전혀 없는 극한 대립과 제 밥그릇 챙기기에만 혈안이 된 개인, 혹은 조직이기주의와 약자의 자기방어조차 용납하지 않은 강자의 횡포와 오만과 독선만이 횡행하고 난무할 따름이다.

그리하여 새 천년, 새로운 세기의 첫해가 넘어가는 이 무렵에도 사람사는 세상은 여전히 이성이 아니라 동물적인 힘의 논리에 따르는 정글과 다름이 없다. 그래서 아직도 우리의 문명은 가히 야만적이고 엽기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음이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끝내 족쳐 뭉개버리고, 이참에 여세를 몰아 이라크까지 손보겠다는 속내를 숨기지 않는다. 평화를 위한 대 테러전쟁이라는 미명에 포장된 미국의 속셈이 무엇인가를 빤히 드러내 보이는 대목이다. 덩달아 일본도 자기 영해에 출몰한 괴선박을 중국의 배타적 경제수역까지 추격하여 마치 축적된 무력을 과시라도 하듯 정조준으로 격침시켜버리고, 이를 전 세계에 공개하는 대담무쌍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패권적 대외정책이나, 일본의 자위권이 갈수록 위험수위를 넘어 사뭇 공세적으로 변하고 있음을 거듭 확인하는 일은 소름끼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세기를 온통 전쟁과 억압과 차별과 기아와 테러의 공포로 몰아넣었던 군국주의와 제국주의의 부활을 단지 징후의 수준을 넘어 실제적인 현상으로 목격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국내 사정은 어떤가. 지난 보궐선거를 통해 절대적 다수의 우위를 점한 야당은 국민의 여론이나 통치권 자체를 무시하는 오만방자한 힘의 논리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여론이나 정책의 타당성 따위는 아랑곳없이 오로지 기득권 옹호를 위해 밀어 부친 교원 정년 연장안이 그렇고, 건강보험 재정통합 백지화가 그런 대표적 실례다. 국민들은 오만하고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야당의 이런 행태를 지켜보며, 이들의 역사적 정체와 수권능력을 다시금 되새겨보지 않을 수 없다. 그리하여 국민들은 희망과 대안이 부재한 암담한 현실 앞에서 더할 나위 없이 답답하고 우울한 이 세모를 보내고 있음이다.

그렇다고 우리는 현실 앞에 그저 망연자실하여 희망을 포기할 것인가. 그래선 안 된다. 지금 이 추위 속에서도 쑥이나 꽃다지, 냉이 따위 봄꽃들이 여린 몸으로 언 땅을 헤집고 나오는 산고를 겪고 있음을 생각해보자. 눈뜨고 보면, 우리의 현실에서도 얼마든지 이런 의미 있는 노력들은 있다. 세계 도처에 미국이나 일본의 패권주의에 저항하는 깨어있는 이성들이 버티고 있고, 다행히 국내에도 여당의 쇄신 움직임이 있는가 하면, 야당에도 당론을 거부하는 소신들이 있다.

아직은 연약하지만 이런 노력들을 소중히 보듬어 우리들의 희망으로 조직하고 가꾸어야 한다.
결코 희망을 포기하지 않으리라 믿고 있는 우리 경남도민일보 독자들에게 필자의 졸시를 새 천 년 첫 세모, 그리고 새해, 희망의 선물로 붙인다.

냉이꽃 1
길가에나 묵정밭
더러는 쇠똥무덤 돌 틈새
찰싹 몸 붙이고 있다가
일제히 고개 들고 일어나
세상을 하얗게 덮어버리는
혼자서는 작은 꽃
어우러져서 큰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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